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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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有天地






별유천지(別有天地)

- 가족묘원조성 헌시

 

 

  엄 혜숙

 

바람이 쉬어가고

비단구름 머무는 곳

쌍용계곡 벽계수에 달빛은 녹아

은빛 찰랑대는 물별이 뜨면

청아한 물소리 베고 누우시어

이젠 편히 잠드소서

 

살아 생전 척박한 땅 맨손으로 일구시어

조의조식(粗衣粗食) 빈핍한 살림으로

올망졸망 감자알 같던 자식 위해

촛농처럼 살다 가신 할어버이

 

한 평 땅 누울 곳 없어 산지사방 흩어져

늘 그리웁던 외로운 묘역에서

불철주야 자손걱정 하늘에 닿아

이제야 도원경에 함께 하게 되셨나니

 

도장산 산겹겹 병풍처럼 울타리 친

풍경화 속으로 포르릉 날아온 콩새 한 자웅

청청한 소나무와 벗하며

영겁을 누리소서

 

 

 

 


도문


도문(道門)

 

 




  엄 혜숙

 

 

동굴 속에는 오랜 세월 멍이 된

지친 말들이 웅크리고 있다

적막함이 풀처럼 무성히 자라

풀벌레 울음소리도 가두고 있다

공중은 소리의 무덤이다

동굴을 몰래 빠져나오느라 떨어져 나온

닿소리들로 왁자지껄한 세상은

평생을 몸 담구어 봐도 해독할 수 없는 미지수다

동굴로 통하는 가파른 언덕길에서

홀로 피어 있는 들국화 하나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물푸레나무 잎맥 위에

도문(道門) 열어 들을 수 있는 귀 열려 있다

세평의 고요가 엘토 음으로 고여 있는 그 곳에

가부좌를 하고 돌아앉는다

어느새 따라 온 황국이 마른 기침을 한다

향기가 동굴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마음찍기






마음찍기

 



엄혜숙 


 

 

렌즈가 나를 빤히 읽고 있다

헐거워진 나, 몸을 옴츠리며 매달려 있다

예리한 눈이 찰칵찰칵 온몸을 훓는다

단단히 잠겨있던 단추하나 힘없이 풀어진다

바다를 찾아 떠났던 버들치

겸연쩍은 듯 파닥파닥 비늘을 털며 나온다

시큰둥하기만 했던 여울목

감기는 그 물살 그래도 잊지 못했을까

부풀어 오른 풀씨 애써 먹어도

차오르지 않는 포만감으로

돌아와야 할 길

마음 길게 풀어 나섰던 여정

엉컹퀴 처럼 소리 없이 갇힌다

포르릉 아직도 날갯짓하며 떨구는 울음

하늘을 가르며 함께 갇힌다


거미





거미

 


 

엄혜숙

 

 


끝없이 올라가고 싶었다

올라간들 다를 것 없는 세상 속을

흙 묻히고 살기 보다는 빠질 수 있는 하늘이 좋아

허공에 햇살로 그물막 지어 살았다

관심두지 않은 온갖 소리들이 기어 올라와

바람 흔들어 내 유리방을 슬그머니 헤집고 달아났다

그럴 때면 두고 온 어린 꽃들과

달빛 가득 고여 있던 옹달샘이

발 아래서 고즈넉히 앉아 손짓하여 불렀다

나는 거꾸로 매달려 떠나 온 세상을 말없이 바라본다

뒤집어 바라보는 나무의 새살대는 잎맥은

햇살을 튕겨 연녹으로 해맑게 비쳤고

시끄럽게 다투어 흐르던 강물은

투명한 목소리로 지줄대며 교향악을 연주한다

햇살 꺾기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이던 세상

오를 줄만 알아 허공에 몸 기대었던 나

햇살 소곤대는 토담 틈에 유리집 하나 지었다

담 너머 지켜보던 라일락 꽃나무

제몸 화르르 풀어 던지며 인사하고 있다

어둡던 골목이 환하다

 


도원경, 복사꽃 그늘에 기대어



도원경, 복사꽃 그늘에 기대어

 


엄혜숙 

 

 

박새 한 무리 영롱한 울음 떨구며

저공비행을 하고 있다

지금 경산 고을은 온통 꽃멀미 중이다

남매지에서 유서(由緖) 깊은 자인방면

긴 국도변은 연분홍빛 도원경이다

하늘거리는 복사꽃 그늘에 서면

고향집 햇살 뒹굴던 말간 툇마루 보인다

옹기종기 둘러앉은 김 오르는 둥근 어머니 밥상에서

세상만사 온갖 시름 잊어버리고

둔덕밭에 난만한 꽃등 바라보며

마음 아득했던 고향길

마음보다 먼저 도착한 봄을 배달하는

바람결의 새살거림에 산란하는 저 꽃잎들

해마다 궁륭 같은 꽃터널이 지어지면

가난한 마음에도 수천가지 꽃망울이 터지고

지쳤던 정 새롭게 익어가는 계절

흐르는 물소리조차 향기가 베어있다

별유천지(別有天地), 꽃그늘 아래

우리네 팍팍한 하루가 길게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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